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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を伝え、ともに平和を考える「ウトロ平和祈念館」の完成にみなさんの支援を!

キャンプファイヤー 寄付型のバッヂ

2022年4月30日。宇治市伊勢田町に「ウトロ平和祈念館」が開館します。多くの方々の支援によって建設が進み外観は完成しました。あと1か月で展示パネルを作成し内装を整えます。初めて訪れる人にもウトロの歴史をわかりやすく伝えるため展示を充実させたいと思います。その作成費用をサポートしてくださいませんか。

現在の支援総額

2,846,500

56%

目標金額は5,000,000円

支援者数

289

募集終了まで残り

終了

このプロジェクトは、2022/04/04に募集を開始し、 289人の支援により 2,846,500円の資金を集め、 2022/04/30に募集を終了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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歴史を伝え、ともに平和を考える「ウトロ平和祈念館」の完成にみなさんの支援を!

現在の支援総額

2,846,500

56%達成

終了

目標金額5,000,000

支援者数289

このプロジェクトは、2022/04/04に募集を開始し、 289人の支援により 2,846,500円の資金を集め、 2022/04/30に募集を終了しました

2022年4月30日。宇治市伊勢田町に「ウトロ平和祈念館」が開館します。多くの方々の支援によって建設が進み外観は完成しました。あと1か月で展示パネルを作成し内装を整えます。初めて訪れる人にもウトロの歴史をわかりやすく伝えるため展示を充実させたいと思います。その作成費用をサポートしてくださいません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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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トロ平和祈念館の完成をともに祝う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にご協力いただいたみなさま、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さまざまな宣伝にふれて、インターネットでの寄付はできないけれどと、ウトロ現地まで来られて直接寄付金を届けに来ていただいた方々。また韓国はじめ海外で資金を集めていただいた方々に対しても、この場を借りて御礼を申し上げ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クラファンに協力いただいた289人、2,846,500円のご支援に感謝をお伝えするとともに、ここには表れていないご支援のおかげで、祈念館の展示品や安全対策の費用を集めることができたことを報告いたします。詳細は5月5日までの「ウトロ ウィーク」を終えてから連絡いたします。何とか目標を達成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お時間がありましたら、ぜひとも当館にいらしてくださいませ。スタッフともども、心より歓迎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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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よいよ開館します。ようやくここまでたどりつくことができました。ご支援いただいた皆様、応援していただいた皆様に、心から感謝いたします。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も明日が最終日です。みなさまのご支援を最後までお願い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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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命館大学の勝村誠と申します。いまはウトロ平和祈念館の開設準備として主に展示の検討にかかわっています。私がウトロに初めて足を運んだのは、2005年8月15日に戦後60年を記念してウトロで開催された新井英一さんのコンサートの日でした。ウトロに取り残された人びとの苦難に満ちた生活のことも、裁判闘争のこともろくに知らずに訪れました。その前年に学外研究の機会をいただいた私は韓国の釜山で暮らしたのですが、釜山の街のあちこちに日本の植民地支配と戦争の痕跡が残っていることに衝撃を受けました。1876年(明治9)に締結された江華島条約により、釜山には日本人居留地が認められ、続々と日本人植民者が朝鮮に押し寄せ、日本のための開発が進められ、それに押し出されるように朝鮮人が渡日したわけですが、帰国後の私は日本国内に刻まれている植民地支配の跡を確認したいとの漠然とした思いから、ふらっとウトロに立ち寄ったのでした。ウトロについて学び始めてみると、そこには様々な要因が重なって、日本の植民地支配、侵略戦争、戦後の在日朝鮮人に対する差別・偏見、それに抗う在日朝鮮人の歴史がぎゅっと凝縮されており、驚きの連続でした。ウトロ平和祈念館にはそのような人びとの生きた姿が生き生きと記録されています。ウトロ平和祈念館が、そのような歴史を直視し振り返ることができる平和博物館・人権博物館として、そして地域で親しまれる学びの拠点として、成長し続け、愛され続けることを心から願っています。리쓰메이칸대학 교수인 가쓰무라라고 합니다.우토로평화기념관 개설 준비로서 주로 전시내용을 검토해 왔습니다.제가 우토로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2005년 8월 15일에 인본 배전후 60년을 기념하여 우토로에서 개최된아라이 에이이치씨의 콘서트의 날이었습니다.우토로에 남겨진 사람들의 고난으로 가득 찬 삶도재판투쟁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방문했습니다.그 전년에 저는 학외에서 연구하는 기회를 받았고 부산에서 살았습니다만,부산의 거리의 곳곳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1876년(메이지 9)에 체결시킨 강화도 조약에 의해부산에서는 일본인 거류지가 인정되어잇달아 일본인 식민자들이 조선에 밀려 건너 일본을 위한 개발이 진행되어거기에 밀려나가도록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만,귀국 후의 저는 일본 국내에 새겨져 있는 식민지 지배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부터훌쩍 우토로에 들렀던 것이었습니다.막상 우토로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거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겹쳐져 일본의 식민지 지배, 침략 전쟁,전후의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편견,그에 행정하는 재일 조선인의 역사가 굉장히 응축되어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우토로 평화기념관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왔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우토로 평화기념관이그러한 역사를 직시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평화박물관·인권박물관으로서,그리고 지역에서 사랑받는 배움의 거점으로서계속 성장하고 사랑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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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トロ地区の名物!?「ウトロコミュニティ喫茶」(不定期)のお手伝いをしています。私が疲れているときも、ウトロ喫茶に行くと、いつもオモニ・アボジ(おかあさん・おとうさん)たちから元気をもらって帰ってきます。「これ食べてみ、おいしいで!」と料理を作って持ってきてくれたり、「あんた元気にしてたか?よう来てくれたなぁ」と肩をだいて喜んでくれます。ウトロ地区の人々は、過去に起こったさまざまな困難や危機を、このように、つながること、声を出しあうこと、食べること、笑うことで、乗り越えてきたんだな、と感じます。ウトロ平和祈念館では、日本で教えられることのなかった在日の歴史を学ぶだけでなく、展示を通してここに生きた人たちに出会えます。そして、今生きている人たちに直接出会い、語りを聞くことができます。この「出会いの場」がこれからも続くように、そして、一緒に新たな歴史を作ってい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みなさんのご支援を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村木美都子(むらきみとこ)우토로 지역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우토로 커뮤니티 카페’(비정기적으로 개최)를 돕고 있습니다.제가 힘들 때에도 우토로 까페에 가면언제나 어머니, 아버지들(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기운을 듬뿍 받습니다.‘이거 먹어봐, 맛있어!’라며 음식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너 잘 지냈어? 잘 왔어’라며 어깨를 토닥이며 기뻐해 주십니다.우토로 지역 분들은 과거에 있었던 여러 어려움과 위기들을이렇게 함께 만나 이야기 하고 먹고 웃으면서 이겨내어 왔다는 것을 느낍니다.우토로 평화 기념관에서는일본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전시를 통해서 여기서 살아온 분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이 ‘만남이 장’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여러분의 많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무라키 미토코(村木美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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弁護士の豊福誠二と申します。2021年8月30日に発生したウトロでの放火事件について、被害者側弁護団代表をしております。私は、ウトロという地域は、「日本に在日朝鮮人がなぜいるのか」という、とても大事な歴史上の事実がまるごと保存されているとても大事な地域だと確信しています。1910年の日韓併合後、朝鮮半島は(台湾もそうですが)地図上で赤く塗られていました。日本になったのです。朝鮮半島の人々は強制的に日本人にさせられました。故郷の土地を政府に取り上げられたり、よい仕事があると騙されたりして(国家総動員法施行後は強制徴用も)、朝鮮半島出身者は、安い労働力として日本に連れてこられて奉仕させられました。京都飛行場建設のために半島出身者が集められた者たちの住処がウトロだったのです。敗戦後の日本は、日本にとどまっている朝鮮半島出身者の国籍を、選択の機会も与えず、一律に奪ってしまいました。これが在日朝鮮人の始まりです。そして、日本は、自らの責任において集めたはずのウトロの朝鮮人労働者の住居について何らの手当もせず放置しました。その結果、ウトロの住民たちは長年に亘って不安定な地位におかれ続け、行政による当然のサービスも受けられなかったのです。これらの歪みはすべて日本の側の問題です。日本に住む市民が、戦争とその責任を忘れず、将来にわたって近隣諸国との友好を保つためにも、ウトロの平和祈念館は大切な施設になるはずです。この平和祈念館の開設が、費用の不足が理由で、危ぶまれているとのことです。これは大変です。ぜひ、あなたのご協力をお願いします。변호사 도요후쿠 세이지라고 합니다. 2021년 8월 30일에 발생한 우토로 방화 사건의 피해자 측 변호인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저는 우토로라는 지역이 ‘왜 일본에 재일교포가 있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확신합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한반도는 (대만도 그렇지만) 지도상에서 빨갛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일본이 된 것입니다. 한반도 사람들은 강제로 일본인이 되었습니다. 고향 땅을 정부가 빼앗거나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속였고 (국가총동원법 시행 후에는 강제징용도),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일본에 끌려와 혹사 당하였습니다. 교토 비행장 건설을 위해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의 주거지가 우토로였습니다.패전 후에 일본은 선택의 기회도 주지 않고 일본에 머물고 있는 한반도 출신자들의 국적을 일률적으로 빼앗았습니다. 이것이 재일코리안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자신들의 책임으로 모은 우토로 노동자들의 주거를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했습니다.그 결과 우토로 주민들은 수년간 불안정한 상황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행정 서비스 조차도 받지 못했습니다.이러한 부조리는 모두 일본측의 문제입니다.일본 주민들이 전쟁과 그 책임을 잊지 않고, 앞으로 이웃 국가들과의 우호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우토로 평화기념관은 소중한 시설이 될 것입니다.이 평화 기념관의 개설이 비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위기에 놓여져 있다고 합니다.이는 큰 문제입니다.부디 여러분의 협력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