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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学校は、皇民化政策で奪われた言葉や文化を取り戻す場として誕生した朝鮮人の自主学校を起源とします。言い換えれば朝鮮人学校は、存在それ自体が植民地主義や奴隷制(いわゆる「徴用工」や「勤労挺身隊」、「技能実習生」などもその一種)の資源たるレイシズムへのまったき「否」です。だからこそでしょう、日本はその営みを弾圧し、植民地帝国の継続としての「戦後」をスタートさせました。1948年の弾圧は、朝鮮人学校だけでなく、日本が自らの「共生社会」への道を閉鎖した日に他なりません。
「人間が自分と同類の者たちの間でしか生きないならば、寛容と共感は決して実践されることもなければ、広がりを見せることもない」。ホロコースト生還者を肉親に持つサラ・ロイさんは、「ユダヤ人だけの国」を希求するイスラエルの荒廃を指摘し、こう言いました。このことばは、大陸の東端にある排外主義国家「日本」と、そこに染みついた「他者なき国の希求」という社会病理をも串刺しにします。子どもたちの学ぶ環境を整備する具体的な取り組みは、国が上から垂れ流し、京都事件の犯人ら民間レイシストとの間で循環増幅していく「排外主義」に抗して、地域から「私たちの生きたい社会」を描き出していく営みでもあります。「ウリハッキョ/私たちの学校」支援を通じて、多元的で豊かな社会の像、言い換えれば私、私たちの「共生の文化」を発信していきましょう。
나와 우리들의 ‘공생문화’를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일성
조선학교는 황민화 정책으로 빼앗긴 언어와 문화를 되찾는 장으로 탄생한 조선사람의 자주학교를 기원으로 합니다. 바꿔 말하면, 조선사람의 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식민지주의나 노예제도(이른바 ‘징용공’이나 ‘근로정신대’, ‘기능실습생’등도 그 일종)의 자원이 되는 레이시즘에 완전히 ‘반’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일본은 식민지제국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전후’를 조선학교를 탄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1948년의 탄압은 조선학교 뿐만 아니라 일본이 스스로 ‘공생사회’의 길을 폐쇄한 날이나 다름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 수 있다면 관용이나 공감은 결코 실천될 수도, 퍼져 나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가족이 있는 사라 로이는 ‘유대인만의 나라’를 바라는 이스라엘의 황폐함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배타주의 국가 ‘일본’과 거기에 스며들어 있는 ‘타자 없는 나라를 바라는’ 사회 병리에도 통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환경을 정비하는 노력은 나라가 위에서부터 흘러보내어 교토사건의 범인들과 민간 레이시스트들로 불어나는 ‘배타주의’에 맞서, 지역사회가 ‘우리들이 살고 싶은 사회’를 그려나가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우리학교/우리들의 학교’ 지원을 통하여 다원적이고 풍요로운 사회의 모습, 바로 나와 우리들의 ‘공생문화’를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