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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ロナ禍で学校運営する京都・滋賀の朝鮮学校を応援しよう!

コロナ禍で学校運営する京都・滋賀の朝鮮学校を応援しよう!~教室にクーラーを設置してこどもたちに快適な学習環境を~ 民族教育を受けるこどもたちのため、カンパをお寄せください! クーラーが設置できましたら、京都・滋賀にある4つの朝鮮学校の新型コロナ対策はじめ民族教育の応援カンパとして全校に寄付します。

現在の支援総額

5,523,260

184%

目標金額は3,000,000円

支援者数

958

募集終了まで残り

終了

このプロジェクトは、2020/07/15に募集を開始し、 958人の支援により 5,523,260円の資金を集め、 2020/08/31に募集を終了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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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在の支援総額

5,523,260

184%達成

終了

目標金額3,000,000

支援者数958

このプロジェクトは、2020/07/15に募集を開始し、 958人の支援により 5,523,260円の資金を集め、 2020/08/31に募集を終了しました

コロナ禍で学校運営する京都・滋賀の朝鮮学校を応援しよう!~教室にクーラーを設置してこどもたちに快適な学習環境を~ 民族教育を受けるこどもたちのため、カンパをお寄せください! クーラーが設置できましたら、京都・滋賀にある4つの朝鮮学校の新型コロナ対策はじめ民族教育の応援カンパとして全校に寄付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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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아래를 봐주세요)滋賀と京都の朝鮮学校を考えるとき2つの悲痛な事件が思い出されます。2007年1月滋賀朝鮮初級学校に130余名の大阪府警が軍靴で学校を踏み荒らし強制捜査をした事件、2009年12月京都朝鮮第一初級学校に10余名の在特会幹部たちが巻き起こした「京都朝鮮学校襲撃事件」。もう10年よりも前になりますが、唯一「初級学校」を標的とした国家と民間による暴力としてはっきりと思い出されます。その時の子どもたちや同胞たちがこの10余年をどのように過ごしてきたのか考えただけでも胸が裂ける思いです。しかし、滋賀と京都の民族教育の歴史は、悲痛な出来事ばかりではなく「勝利」の歴史でもあります。1949年日本当局による朝鮮学校強制閉鎖後、日本の公立学校に強制編入された朝鮮学校はいろいろな形態の抵抗と維持を伴いました。日本学校内の朝鮮人学生たちで構成された特設学級「民族学級」の大多数は、放課後に朝鮮語や朝鮮の歴史を教えましたが、その中でも「滋賀型民族学級」は違いました。同胞たちの粘り強い抵抗と説得、要求を経て、3時間目から始まる「全日制民族学級」を勝ち取り、教員たちの給料も公立から保障し学父母委員会もつくりました。滋賀同胞たちは、民族教育の暗黒期に放棄せず「自主的民族教育」の灯火を堂々とつないでいきました。京都は、日本で最初の朝鮮学校が「各種学校」という法的認可を獲得した場所でもあります。49年の閉鎖令以降、二度と日本政府が閉鎖措置をできないように朝鮮学校の「法的認可」を獲得しようという運動が始まり、その記念すべき第一歩となったのが「京都朝鮮学園」(認可学校数7校)でした。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2003年に紆余曲折の末、ほかの外国人学校とは違い、各大学の「個別審査」という突破口を開いた「朝鮮高級部生の大学入試受験資格獲得運動」の先頭にも「京都」が堂々と名前を残しました。京都ではそれ以前の94年に「全国連絡協議会」を結成しこの運動にとりかかっており、その成果として98年には京都大学が国立大学院初の朝鮮大学生の受験を認めました。そして上記した「京都朝鮮襲撃事件」の主犯である在特会幹部たちを相手に起こした訴訟で、京都同胞たちは民事、刑事すべてで堂々と勝利します。この裁判は日本社会で「レイシスト(人種差別主義者)」たちの正体を明らかにするきっかけになったばかりでなく、民族教育の名のもと行われた裁判で初めての勝利という快挙をなしとげました。私は、2011年3月東日本大震災をきっかけに「朝鮮学校と共にする人々 モンダンヨンピル」を結成し運営しています。この10年間、いつも韓国や日本の人たちから「なぜモンダンヨンピルの活動をされるのですか?」ときかれました。もちろん在日民族教育に対する言い難いほどひどい差別や抑圧の歴史が、故郷の私たちに深い罪の意識を抱かせたことが活動の原動力になっていることを否定はしません。しかし、その原動力のもう一つの源は、その苦難の歴史を必ず勝利の歴史に逆転してきた同胞たちに対する尊敬の心です。2007年と2009年、滋賀と京都で当時孤独な闘いを強いられた子どもたちが大人になった今日、朝鮮半島のたくさんの人々が彼らの平和を祈り叫んでいます。並外れた湿気と猛暑のように厳しい日本社会の中で、日本の心あたたかい仲間たちと、故郷の朝鮮半島の人たちで吹かせた涼しく快適な「分断を越える」風が、朝鮮学校の子どもたちの猛暑を吹き飛ばしてくれる風になるように願います。このプロジェクトの勝利のために最善をつくします。朝鮮学校と共にする人々「モンダンヨンピル」 事務総長 金明俊시가와 교토의 조선학교를 생각하면 두 가지 가슴 아픈 사건이 생각납니다. 2007년 1월 시가조선초급학교에 130여명의 오사카부 경찰이 군화발로 학교를 압수수색한 일, 2009년 12월 교토조선제1초급학교에 10여명의 재특회 간부들이 침탈해 벌인 ‘교토조선학교습격사건’.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유독 ‘초등학교’에 가해진 국가와 민간의 폭력이기에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때의 아이들, 동포들이 어떻게 지난 10여년을 살아냈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시가와 교토의 민족교육은 사실 상처만이 아닌 ‘승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1949년 조선학교 강제폐쇄 후 일본 국ㆍ공립학교에 강제편입된 조선학교. 여러가지 형태의 저항과 유지를 도모했지만 ‘시가형 민족학급’은 특별했습니다. 일본학교 내의 조선인 학생으로 구성된 특설학급인 <민족학급>은 대부분 방과 후에나 우리말, 우리역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시가는 달랐습니다. 동포들의 끈질긴 저항과 설득, 요구를 통해 3교시부터 시행되는 ‘전일제 민족학급’을 얻어낸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월급도 공립에서 보장하고, 학부모위원회도 만들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민족교육의 암흑기에 포기하지 않고 ‘자주적 민족교육’의 불씨를 당당히 이어갔던 시가 동포들이었습니다. 교토는 일본 최초로 조선학교가 ‘각종학교’라는 법적 인가를 획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49년의 폐쇄령 이후 다시는 일본정부가 함부로 폐쇄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법적인가’를 획득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첫 발을 땐 곳이 ‘쿄토조선학원’(인가 학교수 7개교)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2003년에 우여곡절 끝에 비록 다른 외국인학교와 달리 <대학 자체의 판단>이라는 정부의 타협을 이끌어낸 ‘조선고급학생들의 대학입학 수험자격 쟁취운동’의 서두에도 ‘교토’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미 94년 <전국연락협의회>를 결성하여 이 운동에 나섰으며 그 성과로 98년에 교토대학이 국립대 대학원 최초로 조선대생의 졸업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교토조선학교습격사건’의 주범인 재특회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교토의 동포들은 민사, 형사 모두에서 당당히 승리합니다. 이 재판은 일본사회에 ‘혐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정체를 낱낱히 밝히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민족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된 재판에서 최초의 승리라는 쾌거로 기록됩니다. 저희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사람들 양쪽 모두에게 10년 동안 받아온 질문이 있습니다. “이 일을 왜 하나요?” 물론 재일민족교육에 가해진 형언하기 힘든 차별과 억압의 역사가 고향의 저희를 깊은 죄의식으로 물들였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원동력의 또다른 중추는 그 고난의 역사를 기필코 승리의 역사로 만들어 낸 동포들에대한 존경심이었습니다. 2007년과 2009년, 시가와 교토에서 슬픈 경험을 한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때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 이제는 온 한반도가 그들의 편임을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조선학교 아이들이 유달리 습기많고 매서운 폭염을 시원한 바람으로 이겨내길 바랍니다. 그 바람은 일본의 친근한 벗들과 한반도의 따뜻한 고향사람들이 만들어 낸 시원하고 쾌적한 ‘분단없는’ 바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승리’를 위해 여기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 김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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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아래를 봐주세요)京都朝鮮第二初級学校は、松尾大社の近くで50年以上も民族教育を続けてきました。はじめて同校に行ったとき、建物はかなり老朽化しているのに、教室には不釣り合いなほど立派な液晶テレビが備え付けられていて、そのギャップに驚いたことがあります。京都府・市では朝鮮学校への補助金が続いていますが、その使途は子ども向けの教材・教具に限られます。したがって窓枠や壁の修繕にも使えないし、教員のパソコンも買えません。教具に投入した補助金の予算があれば、教室にもエアコンを導入できたでしょうが、それもできませんでした。つまり、私の見た「ギャップ」の一因は補助金の制約にあったのです。各教室にエアコンがないため、第二初級では、暑い時期になると、食事の時間だけでも涼しい思いをしてほしいということで、冷房のついた図書室などに子どもらを集めて弁当を食べてきました。もちろん、それはそれで学年をこえた交流の場となってきたかもしれませんが、でも教室で食べるか、一堂に会して食べるかということを、暑さとは関係なく選べた方がよいに決まっています。地方公共団体の補助金が、子どもの学びの環境の格差を生み出しているのであれば、私たちのファンディングによって、少しでもその格差を是正したいと思います。それが、窮屈で閉鎖的な<公>ではなく、新たな開かれた<公>を作り出す道です。교토조선제2초급학교는 마츠오타이샤라는 교토의 유명한 절 근처에서 50년이상 민족교육을 지속해 왔습니다. 처음 이 학교에 방문했을 때, 건물은 노후화 되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액정TV가 비치되어 있어 그 차이에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교토부와 교토시에서는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그 용도는 학생용 교재와 교구에 한정됩니다. 따라서 창문이나 벽 수리 등의 학교 시설에는 사용할 수 없고, 교원이 사용하는 컴퓨터도 구입할 수 없습니다. 교구에 투입할 정도의 보조금 예산으로 충분히 교실에도 에어컨을 설치 할 수 있겠지만, 이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제가 본 그 ‘차이’는 이러한 보조금의 제약에서 온 것 이였습니다. 모든 교실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교토조선제2초급학교에서는 여름이 되면 점심시간만이라도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그나마 에어컨이 비치되어 있는 도서실에서 학생들이 모두 모여 도시락을 먹습니다. 이는 학년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되어온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교실에서 점심을 먹을지 한자리에 모여 함께 먹을 지, 에어컨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더 나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지자체의 공공단체보조금이 아이들의 학습 환경에 차이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들의 펀딩을 통해서 그 차이를 조금이라도 고쳐나가고 싶습니다.이것은 좁고 갑갑한 공공성이 아닌 새롭고 열린 공공성을 만들어 나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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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는 아래를 봐주세요)弁護士の豊福誠二と申します。私が朝鮮学校と関わる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は、思い出したくもない、2009年の悲しい事件でした。悲しい事件がきっかけではありましたが、何度も朝鮮学校に足を運んでいるうちに、屈託のない子供たちの姿や、なんとか自分たちの学校を維持運営していこうとする父母の熱意に触れ、どんどん学校(ハッキョ)のファンになっていきました。朝鮮学校は、同胞たちのパワーと愛(そして国籍を問わない市民たちの善意)に溢れた、すばらしい学校なのですが、設備という点においては、日本の国家予算を投入してもらえておらず、不足があったり老朽化が目立ったりと厳しい現状に立たされております。学校という設備は、警察や消防などと同様、それ自体富を生まない公共財です。学費だけでは到底維持でき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学校の先生の給料をはじめ、設備の入れ替えなど、お金はたくさんかかるのです。日本の学校であれば、たとえ私学であっても生徒一人あたり年間数十万円から100万円程度の私学助成金が投入されるのですが、朝鮮学校の場合、これは全くもらえません。地方自治体から補助金の援助がなされていますが、その額は私学助成金に比べればごく僅かですし、この僅かな補助金ですらカットしている自治体が多いこともみなさんご存知でしょう。また、朝鮮学校は高校無償化・幼保無償化の制度からも取り残されてもいます。経済的には恵まれているとはとてもいえません。ときどき、日本人の税金をどうして朝鮮学校に渡す必要があるのだ、と言う人もいるのですが、税金は日本人だけから取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ことを、どうしてわかっていただけないんでしょうね。私は確信しています。朝鮮学校やブラジル人学校のような民族学校があって、そこで子ども達がよい環境で学ぶことは、そこに子どもを通わせている家族や民族だけではなく、日本という国家全体の利益に沿うことです。近年の酷暑は異常であり、京滋における小学校のクーラー設置率はほぼ100%となっています。そんななか、京都朝鮮第二初級学校と滋賀朝鮮初級学校には、クーラーがないのです。今回の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は、クーラー設置という、あまりに地味な目的を掲げています。予算の圧倒的に足りない中、子どもたちの学習環境を整えるにはこの方法が一番だと、こっぽんおりで着想したことです。みなさんのお財布の中から、無理のない範囲で、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にご協力いただけないでしょうか。それは子ども達の健やかな成長の源泉となることでしょう。민족학교의 존재는 일본전체의 이익 (변호사 토요후쿠 세이지)변호사 토요후쿠 세이지라고 합니다.제가 조선학교를 알게 된 계기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2009년의 슬픈 사건이었습니다.이 비통한 사건으로 조선학교와 연을 맺게 되었지만, 조선학교를 자주 방문하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과 어떻게든 자신들의 학교를 유지하고 운영하려는 학부모님들의 열정을 접하면서 점점 조선학교의 팬이 되었습니다.조선학교는 동포들의 힘과 사랑 (그리고 국적을 불문한 시민들의 선의)이 베어있는 훌륭한 학교지만, 학교 시설은 일본의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부족한 시설이 많고 노후화가 매우 눈에 띄는 열악한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학교라는 시설은 경찰서나 소방서 등과 마찬가지로 부를 창출하지 않는 공공재입니다. 학비만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들의 월급부터 학교시설 교체까지 매우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보통의 일본의 학교라면 사립학교라도 학생 일인당 연간 수 십 만엔에서 100만엔 정도의 사학조성금이 투입되지만 조선학교의 경우에는 이를 전혀 받지 못합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있지만 그 액수는 사학조성금에 비해 터무니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보조금조차도 없는 지자체가 많은 것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더욱이 조선 학교는 고교 무상화와 유보 무상화의 제도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입니다.때로는 일본인의 세금을 왜 조선학교에 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세금은 일본인만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조선학교나 브라질학교와 같은 민족학교에서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배우는 것은 그 곳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가족이나 민족 뿐만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입니다.최근의 무더위는 이상할 정도로 극심한 상태입니다. 교토나 시가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의 에어컨 설치율은 거의 100%입니다. 그럼에도 교토조선제2초급학교와 시가조선초급학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이번 크라우드 펀딩은 에어컨 설치라는 작은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산이 너무나도 부족한 가운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쾌적한 학습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으로 꽃봉오리가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경제적인 여건 가운데 부담이 없는 선에서 크라우드 펀딩에 협력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은 아이들의 성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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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学校応援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100万円を突破しました!ご支援頂いているみなさん、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조선학교 응원 크라우드 펀딩이 100만 엔을 돌파했습니다!지원해 주신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韓国からも力強い応援をいただいています。韓国から朝鮮学校を応援している「モンダンヨンピル」が韓国の市民に呼びかけて、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を応援してくれてい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한국에서도 많은 응원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한국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몽당연필'의 도움으로 많은 시민 분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동참해 주시고 계십니다!정말 감사합니다!モンダンヨンピルFBページhttps://www.facebook.com/152362788159122/posts/3245122128883157/?d=nモンダンヨンピルHP(日本語/우리말)http://www.mongdang.org/jp/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は8月31日までとなっております。みんなで力を合わせて、成功させましょう!引きつづき、まわりの方に広げてください。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크라우드 펀딩은 8월 31일까지 입니다.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꼭 성공 시키도록 합시다!계속해서 주위 사람에게 알려주세요.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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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が朝鮮学校に始めて訪れたのは1999年でした。京都の朝鮮学校にはもちろん、クーラーはなく、扇風機を回しながら、酷暑の夏を、なんとか乗り切ろうとしていた姿が今でも目に焼き付いています。それから20年。滋賀朝鮮初級学校、京都朝鮮第二初級学校にはいまだクーラーが設置されていなかったことに改めてショックを受けました。年々、異常気象といわれる日が続き、夏の暑さは、命の危険をもたらすほどになっています。高校・幼保無償化除外という国からの制度的差別を受けるだけでなく、自治体の十分な支援も想定できない中で、70年以上に及ぶ、朝鮮人自身による民族教育を絶やさない試みが、学校をなんとか守り発展させてきました。しかし、日常では、校舎の雨漏りやバスの老朽化、窓ガラスの補修やペンキの塗り替え、校庭の整備、上下水道の管理など、365日稼働している朝鮮学校の〈日常〉は大変なものがあります。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という新たな市民運動の形態を活用して、多くの方々に朝鮮学校の日常―はかり知れない魅力と運営の困難の双方―を知って頂き、ぜひ、この支援運動にご協力頂きたいです。いま、日本学校はもちろん、ブラジル人学校や中華学校など、多様な「外国人学校」との交流も強まってきています。共生社会のシンボルとしての朝鮮学校の〈日常〉を皆で支え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静岡大学准教授 山本崇記